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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구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 경영학 박사 |
[맘스커리어 = 윤석구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 경영학 박사] 지방보조금 수백억 원의 쓰임을 결정하는 회의실에서, 나는 시민으로서 처음으로 예산서를 들여다보았다.
연초 고양시 지방보조금심의위원 공고가 났다. 별 기대 없이 신청했는데 뜻밖에 선정되었다. 2년 임기 12명 중 절반이 교체되는 시기였다. 시민이 시의 예산 집행을 심의한다는 사실 자체가 새로웠다.
첫 회의 날, 시청 각 부서에서 제출한 보조금 사업 안을 받아 들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가슴이 묵직해졌다. 복지, 문화, 환경, 교육 등 시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이기에 한 줄 한 줄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노인 교통 복지 사업처럼 모두가 공감할 만한 사업에는 기꺼이 동의했다. 하지만 매년 반복적으로 신청되는 사업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실무자에게 묻고, 자료를 살피며 예산의 쓰임을 따져보았다. 행정은 결국 신뢰 위에 서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보조금 심의 회의차 참석 및 지인의 소개인 녹지과의 '고양둘레길 걷기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적은 예산으로도 시민 건강과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이 사업은 보조금 심의의 새로운 기준을 생각하게 했다.
9km 성라 둘레길에서 만난 고양
봄과 가을, 주중과 주말에 고양특례시가 선정한 10여 곳의 둘레길을 시민이 함께 걷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가을 세 번째 행사 코스는 원당역에서 출발해 강매석교를 지나 행주산성 입구까지 9km 남짓. 마침 주중 행사로 시간이 맞아 신청자 50여 명과 함께 걸었다.
평상시 주말에도 자주 걷던 성라공원 둘레길이었다. 녹음이 짙고 황토흙 구간도 있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코스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누군가는 '걷기 행사'라 했지만, 내게는 '시민이 시정을 배우는 교실'이었다.
걷는 동안 마주한 풍경은 낯익으면서도 새로웠다. 들꽃 사이로 스치는 바람, 함께 걷는 시민들의 웃음, SNS에 올려진 인증사진들. 모두가 한결같이 "우리 고양시가 이렇게 좋았나"라며 감탄했다.
이영임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강매석교를 건넜다. 조선시대 한강 물길을 연결하던 이 다리가 지금은 시민들의 산책로가 되었다. 역사가 일상이 되고, 일상이 행복이 되는 순간이었다.
걷기 프로그램의 다섯 가지 효과
이 프로그램을 지켜보며 보조금 심의위원으로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 고양은 역사의 보고다. 북한산성이 늘 우리를 반기고, 산성 안에는 석굴암, 국녕사, 진관사, 삼천사 등 유명 사찰이 자리한다. 사시사철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고, 그 길을 따라서도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둘째, 한강과 호수가 연결된 생태 통로다. 행주산성에서 남으로는 덕은동까지, 북으로는 호수공원길로 이어진다. 강바람 속 갈대의 물결을 느끼며 유유자적 걷는 행복의 길이다.
셋째, 건강이 좋아진다. 다리가 튼튼해지고 특히 눈 건강이 좋아진다. 잡념을 없애고 걷다 보니 핸드폰 유튜브에서 멀어지면서 눈도 보호된다.
넷째, 의료비가 절감된다. 건강해지면 병원 방문이 줄고, 전 국민 의료보험료가 절약된다. 결국 국가재정의 든든한 금고지기 역할을 한다.
다섯째, 지역경제가 살아난다. 참여자들의 SNS 인증은 고양시를 홍보하는 최고의 마케팅이다. 서울과 인근 도시민들이 찾아오면서 소비가 증가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
시민이 주인인 시대
주중은 물론 주말에도 걷기 프로그램 지원에 앞장서는 엄한준 주무관을 비롯한 녹지과 공무원들의 헌신에 박수를 보낸다. 강매석교 등 문화 해설과 자원봉사에 나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지방자치분권 시대, 주민이 예산 심의위원이 되어 지방예산의 수립과 집행에 참여해 보니 비로소 알았다. 지방분권이란 중앙에서 지방으로 권한을 이양하는 것만이 아니다. 시민이 참여하고, 행정이 함께 걷는 것이다.
내년 보조금 심의에서는 이런 걷기 프로그램 예산을 더 적극 반영되기를 희망한다. 시민과 함께 고양을 사랑하고 건강을 증진하며 시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 걸은 성라공원 길의 흙길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는 예산도 반영되었으면 좋겠다고 주무관께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대전 계족산 맨발 걷기 코스처럼 명품 '고양 성라둘레 황토 맨발 코스길'을 조성하면 어떨까. 부드러운 황톳길을 맨발로 걸으며 땅의 기운을 느끼는 시민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작은 예산으로도 시민 건강과 행복을 배가시킬 수 있는 사업이 될 것이다.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지금, 지방보조금심의위원으로 봉사하며 또 다른 보람을 느낀다. 시민으로서 행정을 돕고, 지역의 한 부분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 그 속에 고양의 따뜻한 '정'이 있고, 함께 나누는 '길'이 있다.
행주산성 입구, 강매동 주민들이 가꾼 분홍 노랑 코스모스가 가을 하늘 아래 흔들린다. 걷는 시민의 발걸음마다 고양의 가을이 익어간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오늘도 지방분권의 참뜻을 배운다.
맘스커리어 / 윤석구 고양시 지방보조금심의위원 /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 경영학 박사 yskwoori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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