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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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라 단양군 공무원[사진=본인] |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지난 2017년, 단양군 공무원으로 임용된 김미라 씨는 7남매를 둔 워킹맘이다. 김미라 씨는 “마흔넷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라며 “늦은 나이에 공부하는 것이 쉽진 않았으나 쉽게 주어지는 것은 없다”라며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여 도전하고, 그것을 통해 행복할 수 있다면 전 꼭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밀했다.
많은 부모가 그렇듯 아이가 아플 적 가장 힘들었다는 김미라 씨는 “다자녀를 키우며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라며 힘들 적 자신을 도와준 소아과 의사와 이웃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공무원으로 일하며 큰딸과 남편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는 김미라 씨는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자라며 보고 배워 그들도 부모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라며 “다자녀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주길 바란다”라고 했다.
“한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게 그에겐 가장 큰 행복이다”라고 말하는 김미라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본인과 가족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단양군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미라입니다. 가족 구성원은 남편과 7남매, 그리고 저입니다. 딸 6명과 다섯째인 아들 1명이 있습니다. 첫째는 취업 준비 중, 둘째·셋째·넷째는 대학생, 다섯째 아들은 현재 고2, 여섯째는 그 무섭다는 중2, 일곱째인 귀염둥이 막내는 초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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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사진[사진=본인] |
- 슬하에 자녀가 일곱 명입니다. 보기 드문 다자녀 가정인데요.
결혼 초 남편과 이야기한 자녀 계획은 아들 2, 딸 2이었습니다. 계획은 계획일 뿐, 저는 임신이 엄청나게 잘 되는 체질인가 봅니다. 아이들이 자꾸만 생겼습니다. 우리 가족으로 얼마나 오고 싶어 할까 생각하면 제가 도울 수밖에 없죠. (웃음)
- 마흔넷 살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며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어떻게 일을 시작하려는 마음을 먹었습니까?
학원 강사로 일하다가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뒀습니다. 아이 5명을 키울 때까지 전업주부로 지내며 아이와 남편에게 매진하며 살다가 외벌이하는 남편을 도울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아이들도 공부시키며 수입이 얻으려면 공부방 운영을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당시 첫째가 공부를 곧잘 해 친한 엄마들이 비법을 궁금해한 것이 생각나 공부방 운영까지 염두에 둔 것입니다. 공부방을 열어 몇 달째 운영하는데 덜컥 여섯째가 생겼습니다. 이대로 계속 공부방을 운영하는 건 너무 무리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애초 계획 역시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들 공부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다른 아이의 공부를 봐 주다 보니 아이들이 뒷전으로 밀려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공부방을 접고 다시 전업주부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업무차 기차를 타고 가던 중 옆자리에 앉은 공무원 분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편은 첫아이 돌 무렵 공무원 시험 관련 서적을 사 와서 제게 건넨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아이만 키우고 싶다며 거절했습니다. 그땐 공무원 시험 응시자격에 나이 제한도 있었거든요. 한두 번 만에 합격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구매한 책을 당장 가서 환불하라고 했죠. 저는 양육에만 전념하고 싶다면서요.
남편은 기차에서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며 앞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직장생활을 한다면, 다른 어떤 직장보다도 공무원이 나을 거 같다고 공무원 시험 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단숨에 시험에 붙었느냐고요? 저는 본격적으로 시험공부를 시작한 이후 무려 4번이나 불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나이도 나이지만 아이를 양육하며 시험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때마다 남편은 제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공부에 집중하라고 남편이 집안일을 도맡아 했죠. 남편과 아이들의 희생으로 저는 결국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운도 많이 따랐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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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가족이 함께[사진=본인] |
- 단양군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대전에 살다가 청주로 이사 온 후 처음 가족여행을 간 곳이 단양이었습니다. 한겨울이어서 아이들을 두꺼운 옷을 입혔고, 제 등엔 막내가 거북 등딱지처럼 붙어있었죠. 단양팔경 중 하나인 도담삼봉에서 배를 타고, 고구려의 온달장군과 평강공주를 떠올리게 하는 온달동굴을 다녀왔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단양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 다자녀를 키우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우신가요? 또 그럴 때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참 많이 아팠습니다. 동네 소아청소년과를 집처럼 들락거렸으니깐요. 원장님이 저희 아이들 병원비를 늘 적게 받으셨습니다. 4명인데 3명 값만 받으셨죠. 본인도 딸 셋을 키우다 보니 얼마나 힘든지를 안다고 말씀하셨죠. 아이들 감기가 심해지면 치료기기를 빌려주기도 하셨습니다. 덕분에 집에서 치료할 수 있었죠. 원장님의 배려와 보살핌을 고마워하며 기억하고 있습니다.
설이 다가올 즈음에 둘째가 폐렴을 앓았습니다.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었습니다. 쌓인 눈이 남편의 무릎까지 올 정도였으니까요. 남편은 눈을 헤치며 아이를 동네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원장님은 상태가 좋지 않아 큰 병원으로 가야겠다고 하셨고 결국 아이는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됐습니다. 당시 제겐 돌볼 아이가 2명이 더 있었습니다. 막내는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였거든요. 젖먹이 아기를 데리고 둘째를 간호하는 모습을 본 동네 엄마들이 서로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봐 주었습니다. 남편도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 아이를 돌봤고 나중엔 휴가를 내고 둘째를 간호하기 위해 병원에 머물렀습니다.
열이 떨어지지 않아 기저귀만 채운 둘째를 휠체어에 태워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간호사는 작고 여린 아기의 투약을 위해 손등과 발등, 그리고 여러 곳에 주삿바늘을 삽입했습니다. 그때마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어댔습니다. 아기에게 고통을 주는 게 너무 마음 아팠던 기억도 납니다. 이렇듯 여러 사람의 수고와 희생으로 저희 둘째는 설 전날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아이들을 키우며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전업주부로 아이들을 키우며 지내다 직장생활을 했기에 처음부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분들이 더 대단해 보이기도 합니다.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하면서부터 육아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늦은 나이에 공무원이 됐고, 마흔둘이라는 늦은 나이에 막내를 낳았습니다. 공무원 발령을 받은 뒤 넷째와 막내만 데리고 단양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말 그대로 두 집 살림이었습니다. 주중에는 중1인 넷째를 중학교에 데려다주고 3살 아이는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후에 저는 사무실에 출근 도장을 찍었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아플 적엔 자녀돌봄휴가제도 덕분에 병원에 데려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팀장님과 팀원들도 이해와 배려를 많이 해 주었습니다. 야근해야 할 땐 먼저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 놓고 저녁을 차려주거나, 음식을 사다 준 뒤 사무실로 돌아오곤 했죠.
1년이 채 되기 전 제 가족은 단양에서 완전체가 되었습니다. 다만 남편과 저는 주말부부로 생활해야 했습니다. 아이들이 서로서로 돌보며 잘 지내준 덕에 제가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일과가 궁금합니다.
이제는 막내가 초3인지라 단양에 첫발을 디뎠을 때보다는 다들 조금씩 더 자랐지요. 아이들도 각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답니다. 엄마의 눈을 피해 휴대폰으로 게임하며 보고 싶은 영상을 보기도 하지만요. (웃음)
아침에 6시 30분과 7시에 알람이 두 번 울리는데 잠에서 깹니다. 저는 각 방의 아이들(고등학생·중학생· 초등학생)을 깨웁니다. 30분, 20분, 10분 단위로 아이들에게 지각하지 않도록 준비를 재촉합니다. 그렇게 준비한 고딩이 등교를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고 나면 남은 중학생인 여섯째와 초등생인 일곱째의 등교를 도와준 후 군청 사무실로 출근합니다. 업무에 매진하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다가옵니다.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서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엔 적어도 3개월 정도 야근이 잦습니다. 그때마다 저녁은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합니다. 가끔은 아이들을 위해 외출할 때도 있고, 학교에서 하는 행사를 위해 연가를 쓸 때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자주 있지 않기에 조절할 수 있습니다.
퇴근 후에 아이들 저녁을 챙겨주고 난 뒤엔 제 건강을 위해 일주일에 2~3번 배드민턴을 하러 체육관에 갑니다. 1시간~1시간 반 정도 운동한 후 귀가해 아이들 공부 점검을 하고, 잠자리도 봐줍니다. 아이들이 잠을 청하면 저는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거나 싱크대에 쌓여 있는 그릇을 정리하며 설거지를 합니다. 다음 날 아침을 위해 미리 국을 끓이기도 하고요. 세탁기를 미리 돌려 설거지 후에 빨래를 건조대에 널기 좋게 시간을 맞춰 놓습니다. 모든 일이 끝나면 씻고 잠을 청합니다.
이것이 제 평일의 일과입니다. 주말엔 남편이 집에 있기에 토요일은 제게 꿈 같은 시간인 늦잠을 잘 수 있는 단 하루뿐인 날입니다. 가족들은 토요일 오전 9시 전에 저를 깨우면 온갖 잔소리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웃음)
주말부부를 하는 제겐 우렁각시가 있습니다. 취업 준비 중인 큰딸이 엄마가 없는 시간에 제 역할을 대신해 동생들을 챙깁니다. 우리 큰딸에겐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말 오후에는 일주일 분량의 식량을 사러 마트로 향합니다. 단양에는 큰 마트가 없어 제천까지 갑니다. 채소와 공산품을 나눠 그나마 저렴하다고 생각한 마트를 2군데 골라 다니곤 합니다. 그래도 저희의 일주일 장보기 한도금액인 25만 원을 훌쩍 넘습니다. 먹고 싶은 걸 다 먹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 많은 금액은 아닙니다. 온라인으로도 구매하기에 사실 일주일에 저희가 식비로 소비하는 것은 35~40만 원 정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이들이 적은 집은 음식이 남아서 먹지 못하고 버리게 되는 일이 다반사라고 합니다. 한데 아이들이 많은 집은 음식이 없어서 못 먹게 되니 참 신기합니다. 심리적으로 여럿이 먹을 때가 더 많이 먹게 되는 거 같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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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 함께[사진=본인] |
- 가족 여행이 가족에게 가장 큰 행복을 준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9명이 함께하는 여행은 어떤가요?
몇 년 전만 해도 온 가족이 함께 탈 수 있는 카니발 차량이 있었습니다. 연식은 오래됐으나 잘 굴러가는 차량이었지요. 미세먼지 저감대책으로 오래된 연식의 차량에 매연저감장치를 부착해야 하는 정책이 발표된 뒤 저희 차량은 더 이상 운행하기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아 폐차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5인승 티볼리 차량을 타고 있습니다. 명절에 큰집이나 외갓집에 갈 때도 몇몇은 집에 남겨둘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이 제비뽑기해서 친척집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카니발 차량이 있을 때 저희는 3년간 매해 서해바다가 있는 사목해수욕장에 다녀왔습니다. 늘 당일치기로 다녀왔는데요, 민박을 해도 비용을 감당하기가 벅찼기 때문이죠. 당시 사목해수욕장은 입장료를 받지 않아 저희 가족이 방문하기에 딱 좋았죠. (웃음) 소나무 숲이 있어 그늘을 만들어 주고, 모래가 고와서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모래찜질·해수욕도 하다가 집에 올 적엔 동네 수돗가에서 대충 몸을 닦은 뒤 집으로 돌아오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엔 차에 내비게이션이 없어 인터넷 지도를 출력해 손에 들고 물어물어 길을 찾아가곤 했던 기억이 나네요. 집에 돌아오면 늘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죠. 고속도로에서 잠시 딴생각을 하다 톨게이트를 지나친 날에 엄청 헤매다 새벽에 집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추억이 되었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끝낸 뒤 난생처음 1박 2일 일정으로 동해 고성에 갔습니다. 민박집 바로 앞이 바닷가여서 놀다가 돌아와 쉴 수 있어 좋았고, 민박집 주인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제일 큰방을 우리에게 내주어 마치 피난 온 사람들처럼 한 방에서 잠든 아이들을 보며 남편과 제가 흐뭇하게 웃었던 그날의 풍경이 떠오릅니다. 그 여행을 마지막으로 9명의 완전체 가족이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다 같이 여행을 해 봐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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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내와 함께[사진=본인] |
- 일하는 엄마에 대해 남편과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며칠 전 막내에게 “엄마가 일하는 게 좋아, 집에 있는 게 좋아?”라고 물었는데 일하는 것이 좋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왜 일하는 게 좋아?” 하고 반문했더니 “돈 벌어야지, 그래야 우리한테 용돈 주지”라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이 대답을 듣고서 왠지 우스우면서도 슬펐습니다. 초3인 막내도 현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죠. 남편도 제가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해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평일 야근과 주말 초과근무를 해야 하는 때엔 공무원이 이렇게 일이 많은 줄 몰랐다고 말하곤 합니다. 공무원이란 직업이 바깥에서 보기엔 정시출퇴근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 그렇지 않습니다. 업무가 생각보다 많답니다. 물론 업무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요.
- 칠 남매를 육아하며 힘이 들 적도 많으시겠지만 ‘아이 일곱 낳길 정말 잘했다’라고 느낄 때가 더 많으실 것입니다. 최근 그런 생각을 하신 적 있으신가요? 있다면 관련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 잠잘 때와 먹을 때를 제일 많이 거론하시는데요, 사실 가족이 모두 모일 때가 식사할 때와 잠자리에 들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 가족은 ‘가정의 밤’이라고 하여 가족이 다 함께 모이는 시간을 매주 갖습니다. 재미있는 활동을 하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인데요, 모두 머리를 맞대어 이야기하거나 활동에 몰입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진짜 다 내 배로 낳은 아이인가 싶기도 합니다. (웃음)
갑자기 집에 손님이 오신다고 하면 온 가족이 초비상 상태에 돌입합니다. 각자에게 청소구역과 해야 할 일을 분담해 줍니다. 혼자서 그 모든 일을 하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 힘을 하나로 뭉칠 땐 엄청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순식간에 집안이 정리되고 깔끔해지거든요. 가족사진을 다 함께 찍을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간혹 다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면 절로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라며 둘만의 시간을 보내라고 효도쿠폰(영화관람권과 식사권)을 준비해 줄 때 아이들이 많이 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많은 엄마가 아이를 두고 일하는 것에 대해 부담과 죄책감을 느낍니다. 선배 워킹맘으로서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습니까?
아이를 두고 일하는 것은 마음에 크나큰 부담감이 생깁니다. 거의 일 년째 야근하거나 주말에도 일하러 사무실에 나옵니다. 그럴 땐 큰딸이 제 자리를 좀 채워줍니다. 동생들에게 저녁밥을 차려주기도 하고, 남편도 금요일엔 조금 일찍 귀가해 집안일을 함께합니다.
이런 것으로 죄책감을 느낀다면 저도 마음이 무거워질 테고 이런 마음을 아이들도 느낄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서로가 미안함을 느낀다면 가족 분위기가 어두워질 거 같아요. 아이들과 이런 부분을 같이 이야기하고 마음을 나눈다면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으며 더 마음이 편안해질 것입니다. 가족이 행복하기 위해 일을 하는 하는 것이니까요.
- 다자녀라 정부나 단양군에서 받는 지원이나 혜택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혹은 다자녀 혜택 가운데 아쉽거나 추가됐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다자녀라 주변 분들은 애국자라며 집 한 채씩 줘야 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다자녀라고 혜택을 받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이가 일곱이라고 해서 받는 것이 도시가스·수도세·전기세 요금 할인이 있습니다. 또 8월부터 다자녀지원금이 전국 최초로 충북에서 지원됩니다. 5자녀 이상 가구에 18세 미만의 아이 한 명당 100만 원씩 받게 됩니다. 이 외엔 별로 없네요. 정책 대부분이 출산과 유아시기에만 맞춰 있어 아이들이 성장하는 유년기, 청소년기, 대학생에 대한 정책은 거의 없습니다.
저출생(저출산)이라 하여 정부나 지자체에서 많이 독려하고 있긴 합니다만 실제 초·중·고·대학생을 키우는 가정에 대한 지원은 많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생활비와 교육비 등으로 부모가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자녀가 적은 다른 가정보다 자신은 많은 지원을 받지 못하며 생활한 경우 그 아이들에게 다자녀 계획이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자라며 보고 배워 그들도 부모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 최근에는 아이 낳아 키우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부부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부부에게 선배 부모로서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 쉽다고 말할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등을 희생하며 아이에게 자신을 맞춰가며 생활해야 하는데 지금 MZ세대에겐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비혼도 많고, 자녀 계획이 없는 부부도 주변에서 종종 보봅니다. 부부가 젊을 적엔 둘만으로 사랑하며 행복할 수 있으나(제가 더 삶을 살아봐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이로 인해 웃고 울고 싸우며 그 가정은 활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아이들 3명이 캠프를 가고, 2명은 타지에 있어 집에는 아이 2명과 부부가 이틀 정도 있었습니다. 어찌나 집안이 조용하고 적적했는지 모릅니다. 아이가 없는 집은 더 그러지 않을까요. 집에서도 부부 각자의 일을 하다 보면 얼굴을 마주할 시간도 줄어들 테고, 대화의 시간 역시 줄어들 것입니다. 아이 키우는 것이 힘들고 가끔은 이런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나 아이들이 제 삶의 활력소가 되고 제법 성장한 아이는 엄마, 아빠의 친구로서의 자리를 내어 주기도 합니다. 이럴 때 정말 든든합니다. 아이는 소유물이 아니지만 아이를 통해 내가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함을 느낍니다.
- 맘스커리어는 경력보유여성(경력단절여성)과 육아맘, 워킹맘들의 고충을 두루 헤아리는 언론입니다.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내놓아야 일하는 엄마가 늘어날 수 있을까요?
엄마들이 일할 수 있도록 자녀들의 돌봄 정책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유기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퇴근 때까지 돌봄이 가능하나, 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는 돌봄시간이 짧아지거나 거의 사라지기도 하죠. 이젠 늘봄학교라 하여 이른 아침을 이용할 수 있다고는 하나, 퇴근이 6시 이후이면 아이들을 학원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아이들을 방치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집도 마찬가지구요. 막내는 학교 돌봄이 4시에 끝나서 집으로 옵니다. 현재 첫째가 집에서 취업준비 중으로 집에 있으니 다행입니다만 아니면 학원으로 보내고 그럴 경우 학원비 등으로 경제적으로 더 큰 부담을 갖게 되겠죠. 다자녀의 경우 아이들이 원한다고 다 학원 등의 사교육을 지원해 줄 수가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 다시 일하고 싶은 맘스커리어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마흔넷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공부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쉽게 주어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쉽지 않다고 포기하시겠습니까?! 인생의 남은 시간들을 후회와 아쉬움으로 보내지는 않으시겠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여 도전하고, 본인이 그것을 통해 행복할 수 있다면 전 꼭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생 100세 시대인데 아직 절반도 살지 않았어요. 아직 50년 넘게 살날이 남았습니다. 할 일이 너무나 많죠? 쉽지 않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간절히 원하는 것을 위해 눈물 흘리며 원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런 마음으로 준비하신다면 간절한 소망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hwkim@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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