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팬하우스 모모에서 재출간된 이부키 유키의 '49일의 레시피'
문선이 작가의 어린이 동화 '엄마의 마지막 선물'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인간은 모두 죽음으로 삶에 마침표를 찍는다. 우리는 모두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내가 삶의 주인인 듯한 오늘을 살아가지만 사실 삶이 언제 어떤 식으로 끝나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삶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과도 같다.
이런 죽음은 끝이 아니라, 어쩌면 삶을 완성시키는 또 하나의 장면일 수 있다. 이별과 상실, 회한과 감사가 뒤섞인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보는 일은 오늘을 더욱 충실히 살아가게 만든다. 문학은 그 상상을 가능케 한다.
바쁜 인생을 살아가면서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만 삶의 마지막 페이지가 될 순간을 한 번쯤 그려본다면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책들을 소개한다. 삶의 끝을 상상해보는 일은 오늘을 더 깊이 살아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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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다산책방] |
2023 브라게문학상 수상작인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는 노르웨이 작가 프로데 그뤼텐이 쓴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생의 마지막 언저리에 다다른 닐스 비크의 하루를 통해 모두가 겪게 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노르웨이 피오르 해안가의 작고 고요한 마을, 페리 운전수인 닐스 비크는 여느 때처럼 항해를 이어간다. 그런데 이날은 닐스의 배에 탄 적이 있으나 지금은 세상에 없는 이들이 차례로 배에 올라 자신의 죽음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생의 마지막 날 닐스가 되돌아보는 자신의 삶이 결국 그를 스쳐간 모든 삶의 총합이었던 것이다.
특히 뇌졸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마르타에 관한 기억은 이 소설의 큰 줄기를 이룬다. 매트리스에 남아 있는 자국, 장난스러운 핀잔과 야한 농담들, 등 뒤에서 살며시 감싸안던 감촉 등 그들의 사랑은 마치 시시각각 다른 빛깔을 띠는 피오르의 바다처럼 아름답게 묘사된다.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닐스와 마르타의 재회 장면은 무언가 모를 안도감과 함께 진한 감동과 울림을 남긴다. 브라게 문학상은 이 소설에 대해 "아름답고 유려한 언어를 사용해 복잡다단한 삶의 초상화를 그려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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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모모] |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가 이승을 떠나가는 사람의 시선으로 삶을 돌아보는 책이라면 일본 작가 이부키 유키의 '49일의 레시피'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 책이다. 2011년 출간됐고 2013년에는 NHK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된 이 책은 독자들의 요청에 의해 지난해 12월 오팬하우스에서 재출간됐다.
이 소설은 엄마의 죽음 후 상실감에 빠진 가족들이 "눈물과 후회가 가득한 49재가 아니라, 먹고 마시고 즐겁게 춤추는 유쾌한 축제처럼 이별하고 싶다"는 엄마의 유언에 따라 49재를 준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엄마의 유언에서 남겨진 사람들이 오래 아파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남겨진 가족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엄마 오토미가 남긴 레시피 카드와 인생 연표다. 남편 료헤이는 레시피 카드를 통해 무기력한 삶에서 서서히 탈출하게 되고 가출 청소년이었던 제자 이모토는 인생의 목표가 생긴다. 딸 유리코는 엄마의 애정이 담긴 카드를 보며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의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들은 오토미의 인생 연표를 통해 엄마의 삶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이 책은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가족 공동체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료헤이와 재혼 가정을 꾸린 오토미는 의붓딸 유리코에게 한없는 애정을 쏟고 복지센터에서 만난 가출 소녀 이모토에게 삶을 가꾸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오토미가 떠난 이후 남겨진 이 세 사람이 또 다른 가족 공동체로 연대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뭉클한 감동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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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푸른놀이터] |
문선이 작가의 '엄마의 마지막 선물'은 어린이들에게 가족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책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미진이의 시선으로 엄마가 병마와 싸우며 가족과의 갈등, 슬픔을 극복하는 모습과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단란했던 미진이 가족의 삶은 엄마의 병으로 인해 급격히 달라진다. 미진이는 아픈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하고 동생도 챙기지만 돌아오는 것은 엄마의 지적과 꾸중뿐이다. 미진이는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을 단짝 친구에게 위로받는다. 엄마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며 상황은 안 좋아지지만 힘든 과정을 함께 이겨내고 있는 가족은 더 단단해진다. 특히 엄마가 남긴 마지막 선물은 미진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준다.
'엄마의 마지막 선물'은 아이들이 가족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가족의 소중함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문선이 작가는 "어린 친구들한테 막연한 두려움과 상실감을 갖게 하는 죽음도 우리 삶의 한 단면이고, 새로운 연장선이며, 소멸이 아닌 순환임을 말하고 싶었다"며 "엄마와의 이별은 참 아프고 슬픈 일이지만 그것도 우리 삶의 한 부분임을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려 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 세 권의 책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과 이별, 기억과 회복을 그려낸다. 물론 결말은 다 다르다. 하나 독자들은 그 속에서 살아 있음의 의미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가슴이 아픈 이야기를 간접 체험하면서 가족의 소중함도 깨닫게 된다. 결국 이 책들은 죽음을 말하지만 종국엔 삶을 더 사랑하게 만든다. 문학의 힘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bmkim@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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