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선 교수, ‘디지털 과의존과 중독 이해, 부모의 역할’ 주제로 강의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요즘 많은 학부모들이 '혹시 우리 아이가 디지털 중독에 빠진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안고 산다.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도 견디기 힘들어하고 게임이 끊기면 세상이 무너진 듯 반응하는 아이들. 디지털 기기가 일상이 된 지금, 부모는 어떤 시선과 태도로 아이를 바라봐야 할까?
윤미선 서울여자대학교 교수는 서울학부모지원센터가 주최한 6월 학부모 디지털 소양교육의 두 번째 세션에서 '디지털 과의존과 중독 이해, 그리고 부모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이날 윤 교수는 청소년기 뇌 발달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디지털 중독의 본질과 이면을 짚고 부모가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역할과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 청소년기 아이들의 뇌는 왜 디지털 중독에 취약할까?
청소년기 아이들이 디지털 중독에 취약한 이유는 뇌의 발달 단계와 관련이 깊다. 윤미선 교수에 따르면 우리 뇌는 생명 중추의 뇌, 감정의 뇌, 이성의 뇌 등 크게 3층 구조로 돼 있는데 그중 감정·기억·본능을 담당하는 대뇌변연계는 어린 시절부터 빠르게 발달하지만 사고·판단·절제 등 고차원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의 전두엽은 2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완성된다. 이는 사춘기 아이들이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고 충동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윤 교수는 "이 시기의 아이들은 감정의 뇌는 활발히 작동하지만 이성의 뇌는 아직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태다. 그래서 한 번 화가 나면 걷잡을 수 없고 후회는 해도 통제가 안 되는 것"이라며 "청소년기의 이런 특성이 디지털 기기의 자극적인 구조와 맞물릴 때 중독 위험이 훨씬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스마트폰과 게임, SNS는 즉각적인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뇌에 도파민 분비를 폭발적으로 촉진시키는데 미성숙한 전두엽은 이러한 쾌락 자극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해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 결과, 아이는 현실에서의 학습이나 인간관계에서는 흥미를 잃고 온라인 환경에 과도하게 몰입하며 충동과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청소년기의 뇌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올바른 습관과 환경이 뇌 구조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적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감정의 뇌가 활발한 이 시기에 긍정적인 감정이 반복되면 뇌의 시냅스 연결이 강화돼 전두엽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 윤 교수는 "이는 결국 아이의 인간성, 즉 인성과 연결되는 부분"이라며 "스마트폰 대신 부모의 사랑과 칭찬으로 사람과 연결되는 경험을 자주 쌓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인터넷 중독, 지능 발달에 악영향
인터넷과 온라인 게임에 과도하게 노출된 아이들의 뇌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서울보라매병원 최정석 교수 연구팀의 뇌파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인터넷이나 게임에 중독된 청소년의 경우 집중력과 관련된 베타파가 일반 아동보다 뚜렷하게 감소했으며 스트레스 반응을 나타내는 감마파는 오히려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눈을 감고 쉬는 상태에서도 감마파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측정됐는데 이는 중독 아동의 뇌가 휴식 중에도 과도하게 흥분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뇌파 변화는 기억력과 주의력 저하, 감정 조절의 어려움, 충동성 증가, 불면증 등을 유발하기 때문에 학습 능력뿐 아니라 또래 관계와 일상생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장기적으로는 정서 발달과 인지 발달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윤 교수는 "중독은 단순히 화면을 오래 보는 문제가 아니라 뇌 자체의 회로를 바꾸는 행위"라며 "디지털 자극에 노출된 뇌는 빠르고 자극적인 정보에 길들여지고 이는 독서, 숙고와 같은 느린 사고의 길을 차단한다. 이처럼 과도한 도파민 자극이 반복되면 아이는 현실에서 무기력함을 느끼고 점점 더 온라인 세계에 의존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중독 메커니즘은 아이의 의지나 절제력만으로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에 부모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며 "아이의 뇌가 건강하게 발달할 수 있도록 일상 속에서 아날로그 경험을 충분히 제공해 주자. 책 읽기, 야외 놀이, 예술 경험 등 스마트폰 사용을 대체할 수 있는 활동을 통해 아이에게 전두엽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 '연결의 결핍'에서 시작되는 인터넷 중독...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은 혼자 있을 때, 외롭고 속상할 때, 부모에게 말하기 어려울 때, 스마트폰을 켭니다"
강의 말미 윤 교수는 디지털 중독을 막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로 사람과의 연결을 꼽았다.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과의 연결이기 때문에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으며 아이가 정서적으로 충만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부모와의 관계, 친구와의 대면 소통,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아이의 자기조절 능력을 키워주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이어 윤 교수는 과의존을 예방하는 부모의 6가지 메소드 연기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전략적인 메소드 연기에는 △자녀의 감정을 비난 없이 받아주는 '마음 통역사' 되기 △건강한 습관을 만드는 '행동 교정사' 되기 △목표를 설정하고 훈련시키는 '자기조절 트레이너' 되기 △부모가 먼저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모범 연기자' 되기 △자녀의 스마트 기기 패턴을 관찰하는 '프로파일러' 되기 △과의존이 심해졌을 때 회복을 돕는 '힐러, 히어로' 되기 등이 포함됐다.
끝으로 윤 교수는 "디지털 기기를 무조건 없애는 것이 해답은 아니다. 부모와의 따뜻한 대화, 안정된 생활 패턴,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조절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시간이 아이의 전두엽을 성장시킨다. 중독을 이기는 힘은 공감과 연결에서 나온다"라고 전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디지털 기기는 삶의 일부다. 부모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금지가 아니라 인정과 소통, 그리고 기다림이 아닐까. 아이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어 놓기 전에 마음을 먼저 붙잡아야 할 때다.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bmkim@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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