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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설 풍산고 교장[사진=본인] |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경북 안동시 풍산읍에는 병산교육재단이 설립해 운영하는 풍산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저출생으로 농촌지역 학교는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며 폐교 위기에 놓였다. 이는 곧 지역소멸과도 연관된다. 젊은이들은 농촌을 떠났고 그러다 보니 고령화가 심각해졌다. 학생 수가 감소하며 이들이 주로 이용한 학원, 문구점부터 즐거움을 찾던 장소까지 운영이 어려워지며 폐업했다. 이런 가운데 농촌 지역에 있는 몇몇 고등학교는 전국에서 학생이 모여들고 있다. 자율학교로 지정되며 학교의 교육력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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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산고 전경[사진=본인] |
풍산고는 2003년 자율학교로 지정된 이후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교육 시설과 시스템을 정비하고 전국에서 학생 모집을 시작했다. 학교의 특색 있는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과 철저한 대학 진학 지도, 전교생 기숙사 생활을 기반으로 한 밀착형 생활 관리, 훌륭한 교육 시설 등은 인재를 끌어모으기에 충분했고 이는 좋은 대입 결과로 이어졌다. 현재 풍산고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문학교, 작지만 강한 학교 등으로 알려져 있다. 풍산고등학교의 이준설 교장을 만나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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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학 100일을 기념한 행사[사진=본인] |
- 먼저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풍산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풍산고에서 35년간 재직 중인 풍산중·고등학교 교장 이준설입니다.
- 풍산고는 지역 인구감소로 한때 폐교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전국에서 우수한 인재가 모이는 명문 학교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지금의 풍산고가 있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풍산고는 1968년 3월 1일 풍산상업고등학교로 개교한 이래 지역에 거주하는 수많은 학생에게 꿈과 희망을 기르는 사학의 역할을 잘 수행해 왔습니다. 2000년에 접어들면서 도시에서 자녀 교육을 하고 싶어하는 학부모의 열망이 높아지며 학생 모집이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전국에서 학생이 찾아오는 학교를 만들고 싶은 생각에 교육부 정책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됐습니다. 벤치마킹을 위해 전국 명문고를 매주 찾아다녔습니다. 당시 교육부는 수월성 교육을 추구하고자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오늘날의 자율형 사립고)와 자율학교를 시범 운영하기로 계획하고 공모를 추진했습니다.
저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학생을 고려해 학비가 많이 들어가는 자사고 대신 자율학교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율학교는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권, 교사 선발의 자율권, 전국 단위 모집권이 부여되는 장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고와 같은 저렴한 학비로도 충분히 교육수요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2002 학교 혁신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데 2년여가 걸렸습니다. 이를 보고받은 류진 이사장(현 풍산회장)께서도 적극 추진할 것을 허락했습니다. 풍산고는 2002년 6월 22일에 전국단위모집 자율학교로 지정됐습니다.
-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습니까?
인지도가 바닥인 학교가 자율학교로 지정됐다고 학생이 찾아올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신입생 모집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자율학교 첫해인 2003년은 3개 학급 90명의 모집 인원 중 2개 학급 60명으로 시작했습니다. 실패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국·영·수·사·과 평균석차백분율 상위 30% 이내의 학생이 신입생으로 지원할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용 면에선 희망이 보이는 결과였습니다. 기숙학교였지만 기숙사가 없어 기존의 예절실을 리모델링해 수용했습니다. 2004년엔 여학생 전용 기숙사 완공이 늦어져 인근 미분양된 아파트 23실을 통째로 빌려 사용하기도 했었습니다. 학부모와 학생은 학교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 줬습니다. 학교 정책 변화 과정에서 생기는 불편을 주는 요소는 학생회와 학부모 총회를 통해 적극적인 소통으로 해결했습니다.
인성·급식·건강·안전·성적 등 각 분야에 철저한 상담과 학생관리를 통해 학부모와 학생 스스로가 풍산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학교 안에서 자신이 소중한 존재로서 대우를 받고 있음을 느끼게 했습니다. 기숙학교에 입학해 철저한 자기 관리와 자기 주도적 학습 방식이 습관화되자 성적은 자연스럽게 향상됐고 이는 훌륭한 입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3년의 기숙사 생활을 통해 자립심, 준법정신, 배려심, 봉사정신이 몸에 배어 지적 역량에 어울리는, 리더가 지녀야 할 품성도 갖추게 됐습니다.
학교가 명문고 반열에 오르면서 교내식당, 소·중·대강당, 기숙사(학록3관), 학록 창의관, 서애 도서관 등 최고의 시설을 골고루 갖추게 됐습니다. 재단은 사교육 없이도 양질의 교육과정이 운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행정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풍산고는 학생, 교사, 재단, 교육시설 등 모든 면에 있어서 목표학교가 됐습니다. 많은 학교에선 풍산고를 벤치마킹하고 싶어 합니다. 이젠 선험적 사례의 공유를 통해 미래 청소년 교육을 책임지는 중추적인 학교로 변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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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 함께[사진=본인] |
- 재단에서도 많은 지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병산교육재단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충효사상을 이어가고자 1947년에 풍산중학교, 1968년 3월 1일에 풍산고등학교를 설립했습니다. ㈜풍산이 모기업이며 병산교육재단(류목기 이사장)의 넉넉한 재정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습니다. 사립학교 대부분이 재단전입금이 거의 없는 상황이지만 본교는 250% 정도의 재단전입금을 교육과정 운영비나 장학금 지급, 교육환경개선 등에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풍산이 명문고로 발전할 수 있었던 최대 원동력입니다. 계속 지원을 약속하고 있어서 풍산은 전국 최고 명문고로의 도약을 위해 계속 도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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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 함께[사진=본인] |
- 풍산고의 장점을 소개해 주십시오.
풍산고는 일반계 고등학교가 가기 어려운 길을 잘 달려가고 있는 모범학교라고 생각합니다. 학년당 100명도 되지 않는 학생 수지만 학교와 학부모가 부러워하는 이유는 사교육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교가 대도시 여느 학교처럼 사교육의 영향권에 있었더라면 학부모와 학생의 눈치를 살피느라 교육과정을 주도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아무리 잘하고 있더라도 더 잘하려는 비교우위 심리 때문에 사교육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이 일반적 심리니까요. 비수능 과목이 수업시간에 자리 잡을 수 있고, 책과 자료를 읽고 토론하는 학생주도 수업이 진행되는 인문계 학교가 얼마나 될까요? 중학교 졸업 시 우수한 성적을 갖춘 학생이 풍산고에 입학해 내신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따라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학교에 답이 있다’는 풍산고만의 교육과정 운영은 오랫동안 누적된 성공적인 입시 결과가 있어 학교 교육과정만 충실히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학생끼리 학력 격차가 크고 목표 지향점이 다양한 일반 학교 교실에선 학생의 눈높이에 맞는 수업이 사실상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더욱 사교육 현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 풍산고는 정보·수리·과학 교과특성화학교로 지정돼 있습니다.
고교학점제의 시행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의 교육과정 선택권입니다. 과거엔 학교가 제공하는 교육과정에 맞춰 학생에겐 문·이과 외에 과목의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현행 고교 학점제의 핵심이 선택중심 교육과정으로 학생의 교과목 선택권을 높여 준다곤 하지만 현실의 장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학교 교사 정원의 제약과 학생이 원하는 교과목을 지도할 전공과목 교사를 학교마다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선택중심 교육과정의 분화가 가장 심한 교과군이 사회 탐구와 과학탐구 교과군입니다. 풍산고처럼 학업 역량이 우수한 학생이 많은 학교의 경우 수학, 과학, 정보 교과목에 관한 교육과정 편성 열망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학고나 자사고와는 달리 일반계 고등학교인 본교는 수학·과학·정보 교과군의 교육과정 편성 운영에 제약이 따릅니다.
이를 조금이나마 극복하고 정보·수리·과학 교과목에 대한 교육과정 편성의 탄력성을 제공하고자 정보·수리·과학 융합 특성화 학교로 지정받아 4년째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교과 특성화 과정의 활성화를 위해 13명 미만의 소인수 학생이 과목을 신청해도 개설하고 있고, 교육과정 이수단위 내에서 희망 교과목 수강 신청이 어려운 경우 증배 수업을 통해 수강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만으로 교과 지도가 어려운 경우 대학교에서 강사를 초빙해 수업의 질을 높입니다. 본교와 달리 재단의 재정적 지원이 없는 학교에서는 만족도가 높은 특성화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 풍산고는 매주 금요일 진행되는 독서토론 수업 외에도 다양한 비교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본교는 독서토론 프로그램, 과학탐구 실전 프로그램, 진로맞춤 창의 연구 프로그램, 토론기반 융합프로그램 등 양질의 비교과 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사실 수능시험 결과만을 위한다면 도움은커녕 시간 낭비적 요소가 될 수도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임시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는 밥만 먹어도 되지만 배고픔이 해결되고 나면 인간은 본연의 창의적인 활동을 수행합니다. 주입식 문제 풀이식 교육이 다양하고 창의적 사고력 신장에 방해가 되고 있다는 점은 재론할 여지가 없습니다. 사고 활동이 가장 영민하고 활발하게 생성되는 청소년 시기에 창의성을 고려하지 않는 교육이 참교육인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더디고 실패하기도 하지만 학생들 스스로가 답을 찾고 만들어가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대로 된 다양한 비교과 활동은 진로 및 전공 적합성과 연결되고 중요한 입시결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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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산고는 토론 수업 이외에도 다양한 비교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사진=본인] |
- 풍산고의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합니다. 신입생의 학교 적응을 위해 학교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요?
공동체 생활로 인한 사생활의 불편함을 극복하는 일과, 전자기기 특히 스마트폰으로부터 벗어 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저희 학생들은 사생활의 불편함이 단점일 수도 있지만 비슷한 또래가 각자에게 주어진 목표 달성을 위해서 서로 협력하고 상생함으로써 수험생들이 갖는 불안감을 잘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기도 합니다.
대입이라는 같은 목표 비슷한 고민을 함께 해결하려는 동질적 집단 속에서 혼자서 감내하기 어려운 해답과 시너지효과를 얻기도 합니다. 학생이 가보지 않은 다양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고 국내외 최고의 강사를 초청하여 명사초청 특강을 열어 줍니다. 학생이 공부에서 벗어나 재미난 관심 영역인 진로, 예술, 체육 동아리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시간과 장소를 제공해 주는 일,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하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논밭으로 둘러 쌓여있는 기숙학교에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맛있는 식단을 제공해 주는 일, 편리하게 생필품을 구매하고 간식을 챙겨 먹을 수 있도록 학교 안에 최신의 편의점을 설치하는 등 학생복지를 위해 학교에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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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사진=본인] |
- 풍산고는 탄탄한 공교육 체제 속에서 매년 걸출한 입시 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풍산고의 어떤 교육 시스템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풍산고에선 한 명의 학생도 사교육을 받지 않습니다. 수업시간의 효율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죠. 수업 대부분이 토론식 수업이기에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참여도가 매우 높고 결손학습률이 매우 낮습니다. 수학능력 시험만을 위한다면 일정 부분 사교육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본교는 결과 지향적 수업 학교가 아니라 과정 중심의 학교이기에 수시 대학 입학률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대도시의 많은 학부모가 믿기 어렵겠지만 사교육에 아닌 학교에 답이 있다고 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 학생이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풍산고에 지원하기를 희망하십니까?
풍산고는 자기 주도적 학습 전형 같은 별도의 면접을 하지 않고 중학교 내신성적만으로 선발합니다.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자신을 만들어가고 싶은 학생, 누군가를 이겨서 성공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협력으로 더 큰 성공을 이루겠다는 학생이 지원하면 좋겠습니다.
- 졸업생이 고교 생활을 어떻게 기억하길 바라십니까?
지시나 강요가 빠른 결과를 얻어 낼 수 있을지 모르나 창의성과 자발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은 자신의 분야에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고 있되 내세우지 않으며 선행과 모범을 통해 서서히 주위 동료를 감화시켜 참여케 하는 역량입니다.
3년의 학교생활을 통해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 형제자매 같은 친구를 보고 싶을 때면 언제라도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곳, 아이들을 보내고 싶은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사람의 향기가 나는 인재를 길러내고 싶습니다.
- 현재 대한민국은 인구절벽, 초저출산시대로 인구감소가 최대의 큰 위기입니다. 아무리 좋은 학교라도 학생이 없다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적·교육적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으며 소득수준도 향상되고 있습니다. 워라벨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에겐 결혼과 육아를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히 도심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주원인은 주택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진 고령화 사회에서 인구절벽의 위기는 겪어야 하는 필연이지만, 결혼과 출산을 앞둔 젊은 세대가 편안하게 맘껏 육아할 수 있도록 보육과 돌봄에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탄생의 기쁨을 누리고 싶은 사람도 점차 늘어가지 않을까요. 사회와 국가가 함께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부모에게 아이의 대학 입시는 커다란 숙제처럼 느껴집니다. 전략적인 고등학교 선택이 대입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이의 고입을 앞두고 고민이 많을 맘스커리어의 독자분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바보스러운 답변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이에게 실수할 수 있는 경험을 많이 제공해 주십시오. 목표를 정해두고 아무런 생각 없이 네비게이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모의 틀에 아이를 가둬 버리고 빠른 길로 재촉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강요에 의해 생각 없이 따라간 그 빠른 길에서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미아가 돼 버리는 일을 학교 현장에서 너무도 많이 봅니다. 부모의 성에 차지 않더라도 삶의 주체가 자신임을 확신하고 빈번한 실수가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hwkim@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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