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차원 가이드라인 마련돼야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는 교육부 고시에 따라 연간 15차시의 성교육이 의무적으로 실시된다. 겉보기에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학교장 재량에 따라 운영되다 보니 학교마다 배우는 내용의 깊이가 다르고 일부 학교에서는 동영상 시청이나 형식적인 특강으로 수업을 대신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성교육 전문가를 집으로 불러 아이들에게 연령별 맞춤 지도를 하는 '성교육 과외'를 받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학교의 성교육을 믿지 못해 부모들이 직접 대안을 찾아 나선 셈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성'을 배우고 있을까. 사실 교육부는 2015년 '국가 수준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발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표준안은 발표 직후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조직된 학교 성교육 표준안 철회를 위한 연대회의는 "성교육 표준안이 비과학적이고 성차별적 편견에 기반해서 작성됐으며 청소년에게 금욕을 강요하고 소수자들을 배제하는 시대착오적이고 인권침해적인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고 비판하며 학교 성교육 표준안 폐기 서명운동을 벌였다. 실제 표준안에는 '남성은 적극적, 독립적, 폭력적이고 여성은 소심하고 의존적'이라는 편견과 '결혼 전 배우자를 선택할 때 여성은 외모를, 남성은 경제력을 높여야 한다'는 등의 성차별적 표현이 담겨 있었다.
학부모와 시민단체, 교사단체의 폐지 요구가 이어지자 교육부는 2018년 개정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사회적 논란 속에 새 표준안을 공식 발표하지 못했다. 다만 2019년에는 일부 차별적 표현을 삭제했고 2021년에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부분을 추가했을 뿐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2022년부터 성교육은 국가교육위원회 관할로 이관됐고 각 시·도 교육청이 자체 계획을 세워 학교장이 재량으로 운영하도록 돼 있어 교육부가 더 이상 일선 학교에 지침을 내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2022 개정 교육과정은 보건 교과에서 '성과 건강'을 5대 대단원 중 하나로 편성하면서 디지털 성범죄·양성평등·자기결정권 등 사회적 이슈를 반영해 성교육의 폭과 깊이를 확대했다. 다만 성평등, 성소수자, 섹슈얼리티 등과 같은 일부 용어는 사회적 합의 미비를 이유로 반영되지 않았으며 교육기본법 개정에 따라 양성평등 의식이 강조돼 관련된 교육적 방안들이 교육과정에 반영됐다.
하지만 개정되지도, 폐기되지도 않은 성교육 표준안과 2022 개정 교육과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학교 현장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해 3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교사의 92.8%가 '성평등 관련 교육과정의 목적과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수업 준비가 어렵다'고 응답했다.
학교의 성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성교육도 이제 바뀌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지난 10월 29일 경기도여성비전센터에서 열린 '2025 제14차 경기 GPS(Gender Policy Seminar)'에서 박효진 교사는 "OECD 38개 국가 중 법률로 포괄적 성교육이 규정되지 않은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단 4개국뿐"이라며 "단편적이고 일회성 지도가 아니라 전 교과·생활·생애에 걸친 포괄적 성교육이 필요하다. 낡은 2015년 성교육 표준안을 대체할 새로운 교육과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포괄적 성교육이란 유네스코가 2018년 '국제 성교육 가이드'에서 제시한 교육 모델로 단순히 생물학적 성 지식에 그치지 않고 젠더 정체성, 성소수자 존중, 피임법, 성적 권리와 재생산권 등을 아우른다.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포괄적 성교육을 주요 과제로 규정하고 각국이 아동과 청소년에게 연령에 맞는 교육을 제공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특히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20년 한국 정부에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포함한 성교육을 제공할 것을 공식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강조하는 포괄적 성교육의 방향성과 달리 국내에서는 여전히 성소수자나 젠더 관련 내용을 다루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심의 과정에서도 '성소수자'와 '성평등' 용어를 포함할지 여부를 두고 진보와 보수 진영이 충돌했고 결국 해당 용어를 뺀 교육과정이 통과되자 진보 성향의 위원들이 반발했다. 또한 포괄적 성교육을 반대하는 시민연대는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가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국가교육과정 준수, 이념적 편향 해소, 미성년자 보호 등을 이유로 포괄적 성교육 정책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혼란도 크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육아맘 정씨는 "얼마 전 딸아이가 학교에서 동성 가족도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라고 배웠다고 하길래 놀랐다"며 "아직 제대로 성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에 학교에서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논란 속에서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아이들은 이미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일찍부터 성을 접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학교마다, 교사마다 다른 내용으로 진행되는 성교육은 아이들의 성 인식 격차만 키울 뿐이다. 국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하루빨리 마련돼 학부모가 신뢰할 수 있는 성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이뤄지길 바란다.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bmkim@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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