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스커리어 = 이유정 엄마기자] 남양주 다산유적지에 맑은 바람이 흐르던 지난 11월 29일 토요일, 다산 정약용 선생의 종가에서 해마다 이어지는 시제가 봉행됐다. 유교 문화와 제례 관행이 크게 약화된 오늘날에도 다산 종가는 전통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현장에서 시제 준비와 집례를 맡은 종손과 종부, 차종손, 그리고 이를 지켜본 관람객을 통해 시제가 지닌 의미를 들여다봤다.
![]() |
| ▲[사진=정우진] |
■“시제는 가족의 관계를 확인하는 자리”
다산 7대 종손 정호영(67)
시제 준비를 마친 7대 종손 정호영 씨는 이번 시제의 핵심을 “관계 회복”이라고 설명했다.
“시제는 문화적으로 아주 가치 있는 행사입니다. 흔히 현대를 바쁘고 개인주의적인 시대라고 하지만, 사실은 인간이 소외되고 관계가 단절된 불행한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족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렇게 많은 종친들이 조상의 묘소 앞에 모여 제를 지내는 것은 나의 뿌리와 가족을 생각하게 해 주는 특별한 계기이기 때문에, 이 전통은 계속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
| ▲[사진=정우진] |
다산 종가 시제의 특징에 대해 그는 “집안 행사지만 방계 종친까지 참여하는 폭넓은 제례 문화”라고 말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시제는 직계뿐 아니라 방계 종친들도 자유롭게 참석해 문중 전체의 뿌리를 함께 확인합니다. 이는 우리 나주 정씨 가문의 중요한 전통이죠. 이 행사를 통해 다산 정약용 선생을 배출한 명문 가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되면, 후손 개개인들이 자신의 삶의 과정과 목표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구황작물이 올려진 상…다산의 애민을 보여주는 상징”
다산 7대 종부 이유정(63)
제사 음식을 준비하던 7대 종부 이유정 씨는 다산 종가의 시제 음식이 단순한 의례용 음식이 아니라, 정약용의 삶과 사상을 반영한 상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종가 시제상은 해마다 정갈히 차려집니다. 그 상 위에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다산 선생의 검소한 삶과 백성을 향한 애민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그분의 마음은 음식의 재료 선택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고구마, 상추, 호박과 같은 구황작물들, 즉 어디서나 쉽게 구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 백성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재료들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호박전, 상추버무리떡 같은 것이 저희 종가의 대표 음식으로 오늘 시제상에도 올라갔습니다. 눈에 화려한 음식은 아니지만, 다산 선생이 어떤 마음으로 백성을 바라보셨는지를 후손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 |
| ▲[사진=정우진] |
■“위인이 아니라, 우리 집 어른으로 느껴졌습니다”
다산 차종손 정우원(33)
시제에 직접 참여한 차종손 정우원 씨는 제례 현장에서 느낀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어릴 때부터 정약용 선생은 역사 속 위인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제에 참석해 묘소 앞에 서 있으니 ‘위인’이 아니라 ‘우리 집 조상님’이라는 느낌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그 경험은 개인적인 책임감과 동기 부여로도 이어졌다.
“정약용이라는 큰 이름에 기대서 사는 게 아니라, 제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매년 시제에 와서 조상님 앞에 서는 시간이, 제 삶을 점검하는 기준점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낡은 관습이 아니라, 쌓여온 전통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관람객 박동현(32)
시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관람객 박동현 씨도 소감을 전했다.
“책에서만 보던 장면이 실제로 펼쳐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역사책에서만 보던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제사를 직접 볼 수 있어서 신기했습니다. 특별히 한 핏줄로 연결된 종친들이 한자리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 모습이 돈독해 보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뜻깊은 시간이었고요.”
그는 제사를 단순히 ‘낡은 의례’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제사가 낡은 관습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 속에는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이어온 유교적 전통과 역사적 관습이 응축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문화를 일정 부분 유지하고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효·우애의 전통, 현대의 가치인 존중과 배려로 이어져야”
정호영 종손은 시제가 과거 전통의 반복이 아니라, 오늘의 가치로 재해석되어야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제가 유교적 전통인 것은 사실입니다. 모든 실천 윤리가 가족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원칙에서 시작한 행사니까요. 다만 오늘 시제에 참석했던 분들은 이러한 전통을, 특히 ‘효도’와 ‘우애’라고 하는 실천윤리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존중’과 ‘배려’라고 하는 현대적 가치로 이해했으면 합니다. 이러한 존중과 배려가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이 세상이 좀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 |
| ▲[사진=정우진] |
■ 전통, 한 집안의 의례를 넘어 지역과 사회의 자산으로
남양주 유적지를 내려오는 길에서 가장 강하게 남은 인상은 “시제는 단순한 집안 의례가 아니라, 공동체 회복의 하나의 장(場)”이라는 점이었다.
방문객에게는 전통문화를 직접 볼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 되고, 후손들에게는 정체성과 기준을 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사회 전체가 가족 간 돌봄과 연대의 중요성을 다시 논의하는 지금, 다산 종가의 시제는 오래 이어온 전통이 어떻게 현대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진행된 이 시제는 조상에 대한 예를 넘어, 살아 있는 가족 공동체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조용한 의식에 가까웠다.
맘스커리어 / 이유정 엄마기자 wooami8617@naver.com
[저작권자ⓒ 맘스커리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아이와 문화생활] 한글은 ‘한글용사 아이야’로 배워요!](/news/data/2025/09/23/p1065616863842460_728_h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