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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맘스커리어 = 김영주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경의선은 1905년 11월에 러일전쟁 시기에 일제가 전쟁에 활용하기 위해 용산역부터 신의주역까지 세운 철도이다. 최초의 개통 당시에는 용산역이 기점이었으며 용산에서 효창, 공덕, 서강을 지나 가좌역으로 향하는 용산선이 경의선의 본선이었다.
이러한 경의선은 이제는 더 이상 철도로서의 역할을 하지는 않으며 서울시는 옛 용산선의 폐철길을 서울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효창공원부터 가좌역까지 6.3km의 구간을 정겨운 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경의선 숲길을 필자는 목동에서 공덕동으로 이사 오면서부터 알게 되었고 매주 토요일이면 우리 집부터 가좌역까지 왕복 길을 걷는다.
그 길의 옆에는 재미나는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상점의 상호명이 매우 재미있다. 들어가서 고기를 먹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은 고기꾼 김춘배, 막걸리 한잔을 반드시 먹고 지나가야 할 것 같은 파평윤 씨의 집, 예약도 안되고 반드시 오전 11시 반이 되어야 기다렸다가 들어갈 수 있는, 추운 겨울에도 한참을 기다려서 꼭 먹어야 할 맛있는 딤섬이 있는 정정, 술을 담은 공간이라 벗이 있으면 막걸리를 들이켜고 싶은 주담, 밤에는 한 번 들러 양주 한잔 마시고 지나가야 할 것 같은 베사메무쵸 등등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길이 경의선 숲길의 양옆에 있다.
그 길의 중간쯤에는 네모가방을 메고 옛날 국민학교(초등학교의 옛날 이름)에 다니다가 먼 곳에서 기차가 오나 안 오나 귀를 대고 듣는 국민학교 어린아이의 동상도 있고 기찻길 옆에 서서 깃발을 흔드는 역무원 아저씨 그리고 아기를 들쳐 업고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철길을 지나가려는 아주머니의 동상도 보인다. 그 동상들 옆에는 참새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할 참새 방앗간이라는 곳이 있어 나도 마치 참새가 된 양 그곳을 기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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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영주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조금 걷다 보면 3000번이나 꽃 삼겹살에 칼집을 넣어 항아리 속에 숙성시킨 맛있는 돼지고깃집도 있고 해산물 한식포차도 눈에 뜨인다. 겨울이면 꼭 먹고 싶은 묵은지에 돼지고기를 숭숭 썰어 넣은 묵은지 김치찌개집도 정겨운 풍경이다. 필자와 함께 걷는 나의 친구는 항상 내가 이 길을 걸으면 먹고 싶은 메뉴만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인생에 있어 많은 시간들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즐겁게 보내고 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서강대역 근처에는 “Pho ong Nam 24”라는 베트남 요리 전문점도 있는데 나도 이 집을 아직 못 가봤고 꼭 한번 가서 고수가 들어 있는 베트남 쌀국수를 먹으려고 한다. 서강대역을 지나서 서강하늘 다리옆에는 호기심을 발휘하게 하는 4층짜리 호기심 카페가 있다. 4층 카페가 유지가 잘 될까 하면서도 들어가서 커피와 빵을 사 먹고 싶은 나의 호기심도 발동을 한다.
춘천에나 가야 맛볼 것 같은 맛있는 닭갈비를 파는 곳도 있고 동경의 어느 뒷골목에 있을 것 같은 냄비국수를 파는 혼신 본점에는 우리 랩의 식구들과 한번 가보고 싶어 내가 사진을 찍어 두기도 한 곳이다. 그 옆을 지나면 심지어 숯불로 커피를 볶아서 그윽한 향을 낸 목수의 딸이 직접 뽑아낸 맛있는 커피 전문점도 눈길을 끈다.
홍대역 근처에 다다르면 젊은 연인들과 여행 온 중국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빨간색으로 예쁘게 만든 '레드로드역'과 피노키오 나무 인형을 만드는 공간으로 나무 스테이지라는 공간이 있어 미술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나도 들어가서 뭔가를 만들고 싶은 공간도 보인다. 홍대역과 AK plaza사이에는 항상 백화점의 이벤트를 기다리는 젊은 학생들이 적어도 50여 명 이상은 늘 줄을 서서 애경 플라자의 문이 열기를 기다리며 친구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의선 숲길중 정말 hot 한 곳은 역시 홍대입구이다. 일본식 가락국수집도 여러 개 있고 줄을 서서 사 먹어 본 소금빵을 파는 곳도 있고 그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맛의 서울호떡집도 있다. 1970년대 필자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 외국에 공부하러 가신 아빠에게 편지를 써서 집어넣던 빨간 숲길 우체통도 보인다. 서울시에서 만든 마포순환 열차버스의 노선도 예쁘게 그려져 있어 나도 한번 언젠가는 120여분 동안 순환버스를 타고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길의 이름도 매우 정겨워 친구들과 끼리끼리 이야기 나누면서 걷는다고 해서 '끼리끼리 1길'로 붙여져 있다. 우리 할머니 떡볶이는 고등학교시절 친구들과 먹었던 매운 떡볶이와 이화여대 재학당시 이대 앞에 있던 오리지널 떡볶이를 생각나게 하는 정겨운 곳이다. 친구들과 나는 배가 고프면 항상 오리지널 떡볶이집에 들러서 맛있는 오징어 튀김과 함께 매운 떡볶이를 먹었고 2차는 가미분식에서 주먹밥을 먹고 3차는 그린하우스에서 아이스케키 (막대 아이스크림의 옛날 명칭)를 먹었다. 3차까지 하면 그제야 배가 불러서 기분 좋게 집에 가곤 했다. 그때 그 시절이 많이 그립다.
이처럼 경의선 숲길은 그 옛날 신촌역에서부터 친구와 손잡고 장흥역까지 가서 들른 백마 화사랑의 소중한 추억도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그런 아름답고 정겨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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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영주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맘스커리어 / 김영주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kkyj@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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