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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기자] 중국 조선족은 북간도 한국인

조은희 다문화기자 / 기사승인 : 2023-02-09 1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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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 조선족 거주지 발전상
"조선족이 다시 한국인이 되는 날 오길"
[맘스커리어=조은희 다문화기자] 서울시 영등포 대림동에는 많은 중국 이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1991년 12월 31일, 중국과 한국이 외교통상협정을 맺으면서 중국 조선족들은 '코리아드림'을 안고 국내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정착지는 구로구 가리봉동이다. 그러다 2008년 5월 가리봉동이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되면서 조선족 이주민은 영등포구 대림동으로 대거 이동하게 됐고, 국내 최대 조선족 집거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대림동에 중국 식당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였고, 2009년에는 내국인이 여가를 보내는 중국음식 문화거리로 발달했다. 

대림동으로의 이주 목적은 방문 취업과 기타 체류 자격을 통한 취업 목적이 첫 번째고, 두 번째 이주 목적은 취업을 원하는 자녀를 관광 체류 자격으로 초청해 한국어 공부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족이나 지인으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통해 이주했기 때문에, 대림동의 조선족 공동체 사회는 매우 안정적이다.

한국에 이주한 중국 사람 중 90% 이상은 조선족이다. 나머지 10%는 한족이다. 이들은 조선족 공동체 속에서 함께 융합돼 생활한다. 조선족이라는 민족 이름은 1953년 중국전국인구조사를 통해 소수민족을 구분하고 이름을 지었는데 조선반도에서 이주해온 민족이기 때문에 조선족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이다.

이들이 처음 중국으로 이주할 때는 아침에 중국으로 넘어가서 나무를 해오거나 개간한 황무지에서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서 잠을 잤다. 황무지 개간이 넓어지면서 점차 내륙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농사철에는 중국에서 일하고 가을에 수확해 수레에 싣고 귀향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그러다 1909년 12월 청일간 '간도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본인은 한국으로 이주하게 되고, 한국인은 중국 북간도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다. 집중 거주한 지역은 북간도 지역인 연길·화룡·왕청·훈춘 4개 현이다. 1924년도 조사에 의하면 중국에 거주한 일본인은 987가구-2019명, 한인은 6만8484가구-33만2846명에 달한다. 토지소유권은 인정이 되지 않아 주로 소작농으로 일을 하거나 황무지를 개간해 정한 기간 내에 소작료 없이 농사를 지으며 가족의 생계를 이어갔다. 농작물은 주로 옥수수·수수·조·감자·쌀 등이었다. 하지만 논농사를 하던 사람들도 쌀밥은 먹지 못할 정도로 빈곤에 시달리게 됐다.

집단 거주지가 형성되면서 자녀교육을 하기 위해 서당을 세우게 되는데, 학업 내용은 천자문·명심보감·논어 등 유학 교리와 윤리도덕이다. 나중에는 교회 선교사가 신식학교를 세워 종교활동을 하게 되는데 2~3년의 선교활동 결과 신자가 2000명에 달할 정도로 한인은 종교생활을 통해 공동체를 유지했다. 그리고 중국으로 넘어간 항일무장단체는 사립학교를 세우고, 반일독립사상을 선전했으며 항일운동에 필요한 물자와 자금을 마을에서 조달했다.

초기 정착할 무렵, 부모가 돌아가시면 시체를 한국 국내로 모셔와 고향에 매장했다. 또한 중국 지주와 상생하면서도 부자인 한족이 청혼을 해도 통혼을 금할 정도로 민족의식이 높았다. 이런 생활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이어져 왔다. 오히려 그렇게 희망하고 바랐던 해방이 되면서 어느 날 갑자기 국경이 닫혔고 이들은 중국에서 중국인으로 살게 됐고, 한국 땅을 밟지 못하게 됐다.

오랜 세월은 민족의 얼을 갈라 놓았다. 그토록 그리운 고향을 찾아왔지만 반겨주는 이는 없었다. 또다시 이들은 북간도로 이주했던 것처럼 자기들만의 마을을 만들고, 황무지를 개간하듯 가장 힘든 일에 노동력을 팔아야 했다. 뒤늦게 다문화 정책으로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어 가지만 아직도 공간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배제된 상태에서 완전한 한국인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조선족이 다시 한국인이 되는 날을 손을 꼽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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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희 다문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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