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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석구 前 우리종합금융 전무] |
[맘스커리어 = 윤석구 前 우리종합금융 전무] 금융회사 33년 근무 중 특이한 경력이 있다. 북한 땅에서 3년을 근무했다. 개성인민초중고 대학을 졸업한 북한 여성근로자 두 분과 함께 통일의 작은 씨앗을 심었었다.
다름 아닌 지금부터 20년 전 2004년 늦가을 개성공단을 처음 방문 후 그해 12월 1일 자로 당국의 인가를 받고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금융 서비스 제공을 위해 은행을 설치하고, '남남북녀'라고 남북한 출신이 조그만 점방에서 함께 근무하며 통일금융의 작은 씨앗을 뿌린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6만 명이나 되는 북녘 근로자들에게 지급될 급여는 일용 생활품으로 분배되고 그 돈은 통째로 평양으로 들어가 어느 곳으로 전용된 것인지 알 수 없는 현실, 안타깝게도 12년 만에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상황이 되었다.
2주에 한 번씩 넘나들던 자유로 멀리 송악산의 언덕이 그리워 일 년 서너 차례 통일의 다리를 다녀오지만 그저 한숨만 내실뿐.
함께 근무했던 옥경, 명옥 동무도 어느덧 40대 중년이 되었을 텐데 당시 결혼한 명옥 동무는 화술이 주 특기였는데 아이를 낳고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고 있는지, 곱디고운 옥경 동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철새들은 DMZ 군사분계선을 자유로이 넘나드는데 우리 이산가족은 어느덧 분단 70년, 오호통재라.
지난 열흘 전 민주평통 고양특례시협의회 주관 북한 이탈주민과 함께 일산 호수공원을 한 바퀴 걸었다. 함께 참여한 이탈 주민의 탈북 당시의 리얼한 상황을 들으니 머리털이 솟으며 온몸 전율을 느낀다.
7대조 선조께서 정조대왕과 순조임금 당시 경상관찰사 재임 후 백두산 무산 마을에 약 반년 동안 거주한 일이 계셨는데 오늘 동행한 탈북민 전ㅇㅇ 님 고향이 무산 마을이라는 말씀에 깜짝 놀라며 반가웠고, 개성공단 근무 당시 함께 근무한 옥경, 명옥 님들과 같은 북한 말을 쓰는 동질감에 18년 전의 향수를 자아내게 했다.
몇 번의 탈북을 결심 실행하였지만 번번이 실패 후 다행히 두만강을 건너 버스로 두발로 열차로 공안의 눈을 피해 산으로 들로 벌판으로 계곡으로, 중국 국경을 넘어 라오스를 경유, 태국에 도착 후 끝내 자유 대한민국 품에 안착했던 그 과정을 한 시간 동안 걸으며 들으며 눈물과 한숨.
이제는 자유의 품 대한민국에서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삶을 다하는 날까지 자유를 누리면서 살으시라고 덕담을 드린다. 그리고 그 탈북을 시도한 그 용기를 뜨겁게 칭송하며 고향에 남은 가족들도 평안한 생활 되시라고 당연히 그러하지 않겠지만 기도드린다.
오늘 민주평통고양협의회 이혜민 실장님의 요청으로 호수공원 한 바퀴 DMZ 프로젝트 참석, 어떤 내용으로 이분들께 서포트 할지 소감을 발표하라는 요청에, 지난 기간 금융인으로서 배운 지식을 전한다.
한국에 오신 분들께 은행 급여 생활 통장 만들기, 적금 상품 및 재테크 도움 되어 주기, 때로는 대출 방법도 소개하는 등 금융 분야에 재능기부하겠다고 약속을 드렸다. 기회 되는대로 하나원에도 또는 이분들의 모임에 틈틈이 찾아 금융상품 소개 등을 전달할 생각이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리고 이분들에게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 우리 민주평통은 1회 성이 아닌 주기적인 도움의 프로그램이 제공되길 희망하며 삼 개월 전 이탈 주민이라는 용어 대신, '북한이 고향인 주민' 줄여서 '북향민(北鄕民)'이라는 용어로 바꿔 사용하자고 강력히 제안한 바 있다. 용어부터 예쁜 말로 바꾸어지길 먼저 희망해 본다.
끝으로 오늘 행사를 준비 주관하신 우리 민주평통 고양특례시협의회장님, 집행부 간부님, 함께해 주신 고양시장님, 시의회 의장님, 평통 모든 위원님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맘스커리어 / 윤석구 前 우리종합금융 전무 yskwoori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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