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스커리어 - [MOM터뷰] “가슴 뛰는 일을 끝까지 하면 결국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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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터뷰] “가슴 뛰는 일을 끝까지 하면 결국 이뤄진다"

김혜원 엄마기자 / 기사승인 : 2025-11-29 08: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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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젬마 아트 디렉터
"다름은 서로를 연결하는 힘 될 수 있어"

 

 

▲ 한젬마 아트 디렉터[사진=본인]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예술이 변화시키는 세상… 가슴 뛰지 않나요?” 아트디렉터로 활동 중인 한젬마가 한 말이다. 그는 국내외에서 40여 차례 전시와 공모전에 참여하며 작품 세계를 넓혀 왔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로 ‘그림 DJ’라는 별칭을 얻으며 대중에게 미술을 친근하게 소개해 왔다. 10년 넘게 발달장애 예술가들과 동행하며 그들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데 힘써 왔고, 기업과 예술을 잇는 활동 역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 명예시장으로 위촉돼 시민의 목소리를 전하는 역할까지 맡아 바쁘게 지나왔다. 한젬마 아트디렉터를 만나 그간의 여정과 앞으로의 비전을 들어봤다.


- 지난해 서울 명예시장으로 위촉돼 활동했습니다. 서울시 명예시장은 현장에서 시민 의견을 시정에 반영하기 위해 2016년부터 운영됐는데요. 여성 명예시장으로서 어떤 정책적 화두에 특히 목소리를 내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시 여성 정책이 성 평등에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특히 실버 여성과 장애인의 보호자인 여성에 관심이 많아 그 분야에서 활동하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노인·장애 부문이 분류돼 있어 실제로 제가 가장 관심 있고 활동에 이력을 가진 분야에서 활동하지 못했습니다. 그 덕분에 이전에 제가 관심을 기울이는 데 부족했던 성 평등 이슈에 더 관심을 가지는 기회가 됐습니다. 특히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서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진행한 토크쇼를 통해 일상의 안전, 돌봄, 일자리, 출생 문제에 관해 시민과 소통했던 경험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경력단절 여성의 취·창업을 이끄는 서울 우먼업 프로그램의 운영과 성과는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본래 문화예술계 사람으로서 늘 새로운 기획과 실행을 해온 만큼 여성의 사회적·인권적 성장을 풀어내는 정책과 실행 운영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 세계 여성의 날 기념행사 토크쇼에서[사진=본인]

 

- 명예시장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나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세계 여성의 날 기념행사 토크쇼에서 만난 분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로, 하반신 마비라는 역경을 딛고 일어나 범죄 피해자라는 현실과 보복의 두려움, 그리고 성폭행 피해의 수치심을 이겨내며 가감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 김진주(필명) 작가입니다. 그는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수사기법과 범죄심리를 공부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동시에 피해자보호 제도의 사회적 한계를 세상에 드러내 개선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나아가 피해자를 위해 나서는 피해자로서 ‘피해자 중심의 사회 만들기’에 힘쓰고 그 경험을 담은 책을 출간해 많은 여성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김 작가가 마스크를 쓰고 등단에 올라, 생생하고 힘 있는 발언을 했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인상 깊은 만남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밝았고, 용감했고, 적극적이었습니다. 저를 “언니”라고 부르며 다가온 그와의 만남은 제 인생의 커다란 울림을 준 순간으로 남았습니다.

- 미술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무엇입니까?

살아보니 모든 과정엔 이유가 있고, 누구에게나 주어진 사명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깨닫느냐, 저버리느냐가 인생값의 차이를 만듭니다. 저는 타고난 재능도, 운도 남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를 이끈 동력은 ‘잘하는 일’이 아니라 ‘불가능의 장벽’을 만날 때였습니다. 칭찬은 기분 좋고, 잘하는 것은 기쁨을 주었습니다만 제 동기부여와 열정을 끌어올린 것은 남들이 무리하다고 말하는 것, 불가능하다고 할 때였거든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매우 난감한 상황, 풀어가기 어려운 상황일 때, 오기가 생기고 불끈 에너지가 생겼습니다. 이젠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습관을 갖게 됐습니다. 낯선 일, 남들이 인정하지 않는 일 그런 것들은 새로운 일이 마련이고 신사업, 예술 기획으로 맞닿죠.

저는 어려서부터 미술을 해왔습니다. 예술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 미술만 해 왔습니다. 이런 제가 방송 일을 하게 됐고 제가 생존할 열쇠는 미술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미술 전문 MC로 활동하면서 사람들은 미술에 관심이 별로 없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나에게 전부인 미술이. 세상에서는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사람들이 미술을 보게 하고 싶다’는 목표와 꿈을 가지게 됐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무모한 목표였습니다만 제겐 오직 그 바람뿐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늘의 뜻이었을까요. 저는 ‘그림 읽어주는 여자’가 되었고, 세상은 그 역할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미술의 대중화의 선두자, 길잡이로 제가 있어주길 원했고, 그렇게 쓰였습니다.


25년 전을 생각해 보면 지금은 미술에 대한 관심이 천지차이죠. 세상이 이렇게 미술에 뜨겁게 반응하고 관심이 높아지는 세상이 올 줄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뿐 아니라 다양한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그렇게 낯설고, 무관심한 분야, 콘텐츠가 주류가 되는 경험을 수차례 해왔죠. 그래서 저는 낯선 것을 늘 찾아다닙니다, 그것이 주류가 될 것을 믿는 힘을 가진 경험자가 되었답니다. 그것은 뭐든 실행하는 추진 동력이 됐습니다.

 

▲ 한젬마 스튜디오 내 갤러리에서[사진=본인]

 

- 예술을 기업, 사회와 잇는 일을 꾸준히 해 오셨습니다. 이 일의 긍정적인 효과는 무엇일까요?

예술의 대중화의 선봉자로 자리매김하다 보니. 다양한 분야에서 저를 찾았습니다. 그중에는 기업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의 입장과 고민을 들은 일 또한 제게 큰 자산이 되어 주었습니다.

저는 ‘이어주는 것’을 참 잘합니다. 성향이자 다양한 경험이 저를 그렇게 성장시키고 자리매김 시켰습니다. 수많은 사람과 여러 분야를 접하며 그들의 입장과 필요한 것을 듣게 됐습니다. 제가 다 할 상황이 아니었기에 만남과 연결을 주선하게 됐습니다. 전화 한 통으로 상대와 상황을 알려주고 만남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지요. 주변의 사람들은 제가 전화하고 설명하면 믿습니다. 그게 저를 위한 게 아니라. 쌍방을 위해 나선 것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저를 ‘오지랖’이라고도 부릅니다.


연결만 해주었을 뿐인데 쌍방이 좋은 결과를 도출하고 제게 감사 인사를 할 때 기쁨과 좋은 에너지를 받습니다. 이런 에너지는 순환의 힘을 지닙니다. 그래서 저는 더 힘차고 용감하게 이어주는 행동을 합니다.

매 순간 이야기를 접하면 머릿속으로 매칭을 습관적으로 합니다. 창조의 동력은 사실 무에서 유의 창조가 아닌 무엇과 무엇의 결합에서 새로움이 창조되는 것이기에 제가 계속 창의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술과 기업을 매칭하려면 실력과 성과 기대만으로는 힘듭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중간역할자가 매우 중요하고,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코트라에서 예술과 기업을 매칭해 결과를 도출하는 아트 콜라보 사업을 추진할 때 제가 아티스트 출신이라 예술가 입장을 잘 알고 폭넓은 사회활동으로 기업의 입장 또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었습니다. 단순히 좋은 작품과 기업을 연결하는 것을 넘어 쌍방의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진정한 협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 2021 장애인창작아트페어에서[사진=본인]

 

- 40여 차례 전시와 공모전, 또 여러 기관에서 디렉터로 활동하시며 얻은 가장 큰 배움이나 전환점이 있으셨다면요?

인생은 늘 도전이었습니다. 이는 늘 새로운 일을 찾는 저의 성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가슴이 뜨거운가’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뛰는가’를 기준으로 일을 선택하고 추진합니다.


선택한 일이 자리 잡으면 스스로 정리하고 비웁니다. 선택보다 힘든 것이 정리와 마무리인데요, 수차례 거듭하며 이젠 그 과정도 좀 더 편하진 것 같습니다.


매 순간의 도전은 배움이 됐습니다. 그것이 쌓여 다시 한발 앞선 도전을 실행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 10년간 발달장애 예술가들과 함께해 오셨습니다. 처음 이들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떤 예술가를 좋아하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다양한 장르와 예술가들을 좋아하지만 제게 결정적 영향을 준 분은 운보 김기창 화백이었습니다.


7세에 청력을 잃은 그는 어머니의 도움과 좋은 스승을 만나 예술가로 성장했습니다. 예술성도 뛰어났지만. 청각장애인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며 그들을 위해 앞장섰습니다.

도자기를 가르쳐 청각장애인의 생계를 돕고, 서울 역삼동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센터(훗날 청음 복지관)를 세우고, 한국 농아 복지회 창설 초대회장을 맡아 활동했습니다.

많은 예술가가 자신에게 집중하고 몰입하며 개인적 성향이 매우 강한데, 운보 선생은 자신의 상황을 넘어 이웃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저는 늘 그런 예술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꿈은 현실로 이뤄졌습니다. 청주 공예비엔날레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운보의 집(운보 김기창 화백 미술관)의 관계자들을 만났고, 운보의 집 홍보대사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의 삶과 작품세계에 다가가며 자연스럽게 청각장애인들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이후 코트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어, 청각장애인과 기업을 매칭하는 전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 소문은 발달장애미술 기관까지 퍼져 그 무렵 처음으로 자폐, 다운증후군, 지적장애 등에서 ‘서번트(특수 재능)’이 있는 발달장애 예술가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모든 것은 차곡차곡 걸어가는 과정에서 연결됐습니다. 꿈이 있으면 진입로에 들어설 기회를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느덧 장애 미술인과의 인연이 약 22년, 발달장애 미술인과는 어느덧 12년이 되어갑니다. 지금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교민 발달장애 예술인과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한곳에 모으기 위해 네이버 카페‘ 그림엄마’를 만들었고, 1000명이 넘는 이들과 함께합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이 정보를 나누고, 성장 가이드를 공유하며, 멘토링과 전시 활동을 함께 이어갑니다.

 

제가 살아오며 가장 잘한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림엄마’를 개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명예시장 여성으로 발탁된 것도 ‘그림엄마’의 역할이이 가장 컸다고 봅니다.

- 실제로 발달장애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에서 어떤 강점과 가능성을 보셨나요?

흔히 ‘아웃사이더 아트’라고 하죠. 배우지 않았는데도 타고난 예술성에서 비롯된 놀라운 세계입니다.


음악으로 비유하면 더 쉽습니다. 어린 영재들의 연주를 보며 경이로움을 느끼듯, 미술에도 그런 천재성이 존재합니다. 절대 형태감, 절대 색감, 절대 구성력과 묘사력이 그것입니다.


지우개를 쓰지 않고 단번에 형태를 묘사해내기도 하고, 놀라운 집중력으로 수만 개의 로봇을 탄생시키기도 합니다. 밝고 화려하며 강렬한 색감을 구사하거나, 소리를 색과 형태로 그려내 그 자체를 ‘연주’하듯 표현하기도 합니다. 저마다의 독창성이 완전히 다릅니다.


저는 매일 눈을 뜨면 이 천재들의 작품 세계를 만나고, 새로운 행성을 여행하는 듯한 시간을 보냅니다. 저는 예중·예고·대학·대학원까지 서양화를 전공했는데요, 이들이 독학으로 꺼내는 창조적 표현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즐거움을 느낍니다.

 

▲ 이영애 배우와 함께[사진=본인]

 

- 앞으로 발달장애 예술가들이 한국 미술계와 대중문화 속에서 더 많이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지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이런 영재, 천재는 지금도 계속 태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막을 수 있는 현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열리는 확장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준비와 태도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의 천재성은 분명 서포트가 필요합니다.

제가 10년 넘게 활동하며 지켜본 바로는, 성장의 핵심에는 늘 ‘엄마의 돌봄’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여성, 엄마의 힘’은 강렬하고도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발달장애 예술가들과 동행하면서, 여성과 엄마라는 존재의 이유와 몫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게 체감합니다. 모든 부모의 고민은 결국 한 지점에 맞닿아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이 아이는 어떻게 될까?”


‘엄마의 역할’을 일부라도 대신해 줄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합니다.

이 천재 아티스트들이 창작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품어주는 안정적 기관, 보금자리, 아틀리에, 그리고 전문 매니저가 반드시 마련돼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에게 떠넘길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책임지고 구축해야 할 영역입니다.


검색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 세계 약 3억 1700만 명의 아동·청소년이 발달장애 유발 상태에 있고 국내 기준으로는 2020년 약 24만 7000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장애 인구 증가 추세가 5%를 넘는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발달장애 예술가와 그 가족들이 겪는 현실은 ‘남의 일’이 점점 아니게 되고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인식 개선, 환경 구축은 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입니다.

- 예술인, 또 경영자로서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저는 언제나 새로운 일, 지금 이 시대에 의미 있는 일에 제 삶을 쓰고 싶습니다. 제가 경험한 모든 기회는 미리 상상할 수도 없었던 ‘신세계로 향한 문’이었습니다.


노력하고 성과를 내는 만큼 하늘이 열어주는 기회를 저는 믿습니다. 불안해하지도 않습니다. 가슴이 뛰는 일을 발견하면, 될 때까지 하면 결국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표를 크게 정하기보다, 제 앞에 놓인 가치 있는 일을 알아보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도전의 기회가 주어질지는 모르지만, 저는 늘 제 상상을 넘어선 일을 해왔습니다. 인간이 세우는 목표가 얼마나 작은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맘스커리어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누구나 다르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다름’을 약점이 아니라 자신만의 무기로 삼길 바랍니다. 가난, 고통, 상처, 실패… 이 모든 것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자신다운 걸음으로 이웃과 동행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가진 ‘다름’은 서로를 연결하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hwkim@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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